詩다움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허수경]

초록여신 2011. 1. 21. 10:46

 

 

 

 

 

 

 

 

 

 

이름 없는 섬들에 살던 많은 짐승들이 죽어가는 세월이에요

 

 

이름 없는 것들이죠?

 

 

말을 못 알아들으니 죽여도 좋다고 말하던

어느 백인 장교의 명령 같지 않나요

이름 없는 세월을 나는 이렇게 정의해요

 

 

아님, 말 못하는 것들이라 영혼이 없다고 말하던

근대 입구의 세월 속에

당신, 아직도 울고 있나요?

 

 

오늘도 콜레라가 창궐하는 도읍을 지나

신시(新市)를 짓는 장군들을 보았어요

나는 그 장군들이 이 지상에 올 때

신시의 해안에 살던

도롱뇽 새끼가 저문 눈을 껌벅거리며

달의 운석처럼 낯선 시간처럼

날 바라보는 것을 보았어요

 

 

그때면 나는 당신이 바라보던 달걀 프라이였어요

내가 태어나 당신이 죽고

죽은 당신의 단백질과 기름으로

말하는 짐승인 내가 자라는 거지요

 

 

이거 긴 세기의 이야기지요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의 이야기지요

 

 

 

*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 문학동네, 2011. 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