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어놓은 옷이 마르는 사이
축축한 영혼이 서성이는 걸 봤어
빨래처럼 구겨진 얼굴을 하고
구멍 난 발자국 찍으면서
앞마당을 걷고 있었어
올이 다 풀린 입으로
나를 돌아보며 웃기도 했어
빛바랜 지 오래된 웃음이
쓸쓸하고 또 쓸쓸해서
어떤 표정으로도 그를 대할 수 없었어
잔뜩 물먹은 머리는
짜도 짜도 여전히 무거웠어
바람이 오래 펄럭이고 간 후에야
겨우 영혼은 희미해져 있었지
그가 찍고 다닌 물방울의 발자국도
풍겨오던 체취도
바람을 따라 자취를 감췄어
건조대의 옷이 마르는 사이
내가 또 한 번 사라지고 말았어
* 눈의 심장을 받았네, 실천문학사(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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