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국새와 나누려 했던 메아리는
내 안에서 캄캄하게 갇히고
적막의 에너지로 흔들리는 들품과 벼 입사귀들,
참매미들 참으로 온 생애를 다 바쳐 울 때
거대한 파리 구멍처럼 차라리 한 마을이 따라 울었다
살아 있으라 살아 있으라, 서로를 아프게 찌르며
무성한 가시를 키우는 탱자나무 숲
끊임없이 목숨들을 지우려는 폐허의 힘과
온몸으로 폐허를 이겨내려는 목숨들이
팽팽하게 맞서는 그곳에서,
오래 붐비는 고통의 모래알 밟으며
세월보다 먼저 세월을 살아버린 할머니,
감꽃이 노을에 번져가듯 걸어 나오셨다
ㅡ 『세상의 모든 저녁』, 민음사(1993)
* 감나무 잎에 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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