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눈의 심장을 보았네 [길상호]

초록여신 2010. 10. 6. 16:41

 

 

 

 

 

 

 

 

 

 

당신은

새벽 첫눈을 뭉쳐

바닥에 내려놓았네

 

 

그것은

내가 굴리며 살아야 할

차가운 심장이었네

 

 

눈 뭉치에 기록된

어지러운 지문 때문에

바짝 얼어붙기도 했네

 

 

그럴 때마다

가만히 심장을 쥐어오던

당신의 손,

 

 

온기를 기억하는

눈의 심장이

가끔 녹아 흐를 때 있네

 

 

 

 

* 눈의 심장을 보았네 / 실천문학사, 2010. 9. 27.

 

 

 길상호 시인의 시들은 눈송이처럼 차면서도 수정처럼 맑다.

 마지막 넘어가는 햇살처럼 서러운가 하면 여린 귀를 내놓은 연처럼 아름답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이 시집의 시들은 시인 스스로 자신의 시의 싹을 튀웠다고 말하는 '구름에서 뛰어내린, 마른 땅에 머리가 터진' 그 수많은 빗방울을 닮았다.

 그 빗방울이 내는 소리는 요란하지 않다.

 그러나 가만히 귀를 기울이는 자에게만 그 소리는 많은 것을 얘기한다.

 어쩌면 그 소리는 세상의 가장 깊은 데서 들려오는 소리일는지도 모른다.

 ㅡ 신경림(시인)

 

 

 

 

'詩다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꽃 피는 옛집으로 [유하]  (0) 2010.10.08
검포도 여자 [김원경]  (0) 2010.10.08
손가락이 하는 말 [길상호]  (0) 2010.10.06
새의 부족 [손택수]  (0) 2010.10.05
아침 [문태준]  (0) 2010.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