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해바라기 [신현정]

초록여신 2010. 9. 19. 10:32

 

 

 

 

 

 

 

 

 

 

 

해바라기 길 가다가 서 있는 것 보면 나도 우뚝 서보는 것이다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이고 쓰고 벗고 하는 건방진 모자일망정

머리 위로 정중히 들어올려서는

딱히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간단한 목례를 해 보이고는

내 딴에는 우아하기 그지없는

원반 던지는 포즈를 취해보는 것이다

그럴까

해를 먹어버릴까

해를 먹고 불새를 활활 토해낼까

그래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거겠지

오늘도 해 돌아서 왔다.

 

 

 

* 현장비평가가 뽑은 2010 올해의 좋은시, 현대문학

 

 

 

 왜 이 시의 "해바라기"는 불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걸까. 노오란 해바라기 꽃밭이 주는 밝고 따스한 느낌 대신 강렬함이 시 전반을 지배한다. 이 시에서 해바라기는 실제 꽃이 아니라 시인의 자화상에 가깝다. 고흐의 누르죽죽한 갈색에 가까운 해바라기 또한 그렇지만, 이 시의 해바라기는 고흐의 그것과 다르다. "해를 먹어버릴까/해를 먹고 불새를 활활 토해낼까"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불타오름. 그 강렬함에는 죽음의 냄새가 배어 있다. 해를 향해 원반을 던지는 포즈. 시인은 생의 종말을 앞두고 건곤일척乾坤一擲 시 한 편을 걸었던 것일까. 해를 바라보는 해바라기가 아니라 차라리 스스로 해가 되고자 하는 소원대로, 그는 이제 해가 되었다. 오늘 해를 돌아서 오지 않고 해에게로 갔다. 왜 모든 절명시에서는 피 냄새가 나는 것일까, 유고시임을 알지 못한다 해도, 이 시에서는 생의 마지막 불꽃의 강렬함이 진하게 감지된다. 타고난 시인은 자신의 죽음조차 예견하는 것일까.

ㅡ<해설>, 문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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