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가을의 동화 [박형준]

초록여신 2010. 9. 7. 07:34

 

 

 

 

 

 

 

 

 

 

 

 

어머니가 밥을 짓고 있었다.

어머니의 가마솥 너머로 학교의 유리창이 보였다.

학생이 없는 교실 유리창에 새떼가 날아갔다.

낙수 받는 흠통으로 빈 교실이 내려앉고 있었고

아침은 자꾸만 침몰해가고 있었다.

방문을 열고 소리쳐 어머니를 불렀다.

깡보리밥만 먹으면 엄니, 방구만 나온당께.

망령 난 할머니가 벽에 처바른 변자국처럼,

열어놓은 방문으로 들어온 깡보리밥 냄새가 목을 죄었다.

 

 

서둘러 책보를 메고 학교로 뛰어갔다.

깡보리밥 밥상에 둘러앉은 수저들이 달그락거리며 따라왔다.

깡보리밥만 먹으면 엄니, 방구만 나온당께.

방구 소리에 여선생님의 풍금 소리가 끊기곤 했다.

 

 

그날

자주 끊기던 풍금 소리에 붉어지던 내가,

공중변소 깨진 창 너머

밥냄새를 풍기는 달,

까맣게 탄 솥바닥을 올려다보고 있다.

 

 

 

 

* 빵냄새를 풍기는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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