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땐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는 기억 때문에
슬퍼질 것이다
수많은 시간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꽃들이 햇살을 어떻게 받는지
꽃들이 어둠을 어떻게 익히는지
외면한 채 한곳을 바라보며
고작 버스나 기다렸다는 기억에
목이 멜 것이다
때론 화를 내며 때론 화도 내지 못하며
무엇인가를 한없이 기다렸던 기억 때문에
목이 맬 것이다
내가 정말 기다린 것들은
너무 늦게 오거나 아예 오지 않아
그 존재마저 잊히는 날들이 많았음을
깨닫는 순간이 올 것이다
기다리던 것이 왔을 때는
상한 마음을 곱씹느라
몇 번이나 그냥 보내면서
삶이 웅덩이 물처럼 말라버렸다는
기억 대문에 언젠가는
* 생의 빛깔, 문학과 지성사(2010. 3.)
모든 것이 틈으로 왔다.
안의 어둠은 틈을 통과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 팽창한 어둠을 밖으로 밀어내지 못했다.
틈새를 통과하며 구김살을 편 빛살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온몸에 빛살을 꽂고 어둠 속에 머문 시간들……
어둠의 순수를 위해 틈새로 들어오는 빛을 하나하나 찾아내다 보면, 신기하게도 자신이 아주 순한 사람처럼 여겨졌다. 거울 속 얼굴은 길들어 있었다. 참을 수 없어 비명을 질렀다. 그림자 속에는 오래전 버린 것들이 곡식 단처럼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ㅡ 시집 뒷표지글, <시인의 산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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