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언젠가는 [조 은]

초록여신 2010. 7. 12. 16:38

 

 

 

 

 

 

 

 

 

 

 

 

내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땐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는 기억 때문에

슬퍼질 것이다

수많은 시간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꽃들이 햇살을 어떻게 받는지

꽃들이 어둠을 어떻게 익히는지

외면한 채 한곳을 바라보며

고작 버스나 기다렸다는 기억에

목이 멜 것이다

때론 화를 내며 때론 화도 내지 못하며

무엇인가를 한없이 기다렸던 기억 때문에

목이 맬 것이다

내가 정말 기다린 것들은

너무 늦게 오거나 아예 오지 않아

그 존재마저 잊히는 날들이 많았음을

깨닫는 순간이 올 것이다

기다리던 것이 왔을 때는

상한 마음을 곱씹느라

몇 번이나 그냥 보내면서

삶이 웅덩이 물처럼 말라버렸다는

기억 대문에 언젠가는

 

 

 

 

* 생의 빛깔, 문학과 지성사(2010. 3.)

 

 

 모든 것이 틈으로 왔다.

 

 안의 어둠은 틈을 통과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 팽창한 어둠을 밖으로 밀어내지 못했다.

 

 틈새를 통과하며 구김살을 편 빛살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온몸에 빛살을 꽂고 어둠 속에 머문 시간들……

 

 어둠의 순수를 위해 틈새로 들어오는 빛을 하나하나 찾아내다 보면, 신기하게도 자신이 아주 순한 사람처럼 여겨졌다. 거울 속 얼굴은 길들어 있었다. 참을 수 없어 비명을 질렀다. 그림자 속에는 오래전 버린 것들이 곡식 단처럼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ㅡ 시집 뒷표지글, <시인의 산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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