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가지를 타고 다니며 나무의 수액을 핥는
청설모의 하는 양을 보며 문득 생각한다
시란 저 나무와 같은 것이겠거니,
어미 청설모와 그 새끼들의 입을 적셔주고 목을 추겨주는
수액을 분비해내는 일!
한 마리 허기진 백로를 위해 때로는 먹잇감이 되어주는
빙어처럼 살고 싶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시를 쓰기도 전에 몸을 먼저 써버리는 일,
그건 바라는 바가 아니라 하더라도
나는 다시 생각한다
내 시가 나무의 수액이 될 수 있는가를
정갈한 수액을 기꺼이 내놓을 수 있는가를
청설모야, 내 시의 맛이 어떠하냐 네가 먹을 만하냐
어째 나는 식물성으로 회귀할 수 없는 육식성에 길든
위험한 동물, 내 시는 내겐 해로운 분비물인 것만 같구나!
* 포도알이 남기는 미래, 창비(2009)
'詩다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밭에서 [마종기] (0) | 2010.06.28 |
---|---|
펜은 삽보다 가볍다 [이선영] (0) | 2010.06.25 |
냇물에 철조망 [최정례] (0) | 2010.06.23 |
'풋'을 지나서 [안현미] (0) | 2010.06.23 |
의자를 기다린다 [송재학] (0) | 2010.0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