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청설모 [이선영]

초록여신 2010. 6. 25. 06:05

 

 

나뭇가지를 타고 다니며 나무의 수액을 핥는

청설모의 하는 양을 보며 문득 생각한다

시란 저 나무와 같은 것이겠거니,

어미 청설모와 그 새끼들의 입을 적셔주고 목을 추겨주는

수액을 분비해내는 일!

한 마리 허기진 백로를 위해 때로는 먹잇감이 되어주는

빙어처럼 살고 싶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시를 쓰기도 전에 몸을 먼저 써버리는 일,

그건 바라는 바가 아니라 하더라도

나는 다시 생각한다

내 시가 나무의 수액이 될 수 있는가를

정갈한 수액을 기꺼이 내놓을 수 있는가를

청설모야, 내 시의 맛이 어떠하냐 네가 먹을 만하냐

어째 나는 식물성으로 회귀할 수 없는 육식성에 길든

위험한 동물, 내 시는 내겐 해로운 분비물인 것만 같구나!

 

 

 

 

 

* 포도알이 남기는 미래, 창비(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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