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의자를 기다린다 [송재학]

초록여신 2010. 6. 23. 06:02

 

 

 

 

 

 

 

 

 

 

 

도덕경을 읽은 사춘기 이래 나는 의자를 기다려왔다

의자라는 모래, 의자라는 책의 예감

하루 종일 움푹 파인 그늘에서 책만 읽는 남자!

 

 

그러나 내 생애에는 미래가 다가오지 않으리라는 불길함이 먼저 의자에 앉아 있다

내가 의자가 아닐까라는 몸씁 생각에 골몰한 것도 그때

가만히 보니 굽은 척추를 약간만 굽히면, 부러지기 쉽긴 하지만 의자의 딱딱한 틀과 비슷하고

연골에 염증이 생겼지만 무릎에도 살이 조금 남아 있어서

한 사람의 사색을 부추기는 데 지장이 없을 듯하다

팔걸이가 필요하다면 내 위에 앉은 이를 가만히 포옹할 이 두 손

그가 쉬고 싶다면 파미르 고원의 파밭 냄새를 맡게 해줄 것이다

만약 어둠이 그립다면 내 눈알을 파내고 안을 보게 하리라

이제 잠들다 깨어나면 나는 의자의 살과 뼈,

의자 속에서 성장하리라

하여 지금 내가 기다리는 건 이 색다른 의자에 앉을 속 깊은 사람

그가 읽는 도덕경에 가만히 귀 기울이면 그만일 삶

 

 

 

* 진흙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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