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당신과 나는 꽃처럼 [이장욱]

초록여신 2010. 6. 14. 11:58

 

 

 

 

 

 

 

 

 

 

 

당신과 나는 꽃처럼 어지럽게 피어나

꽃처럼 무심하였다.

당신과 나는 인칭을 바꾸며

거리의 끝에서 거리의 처음으로

자꾸 이어졌다.

무한하였다.

 

 

여름이 끝나자 모든 것은 와전되었으며

모든 것이 와전되자 눈이 내렸다.

허공은 예측할 수 없는 각도로 가득 찼다.

 

 

누군가 겨울이라고 외치자

모두들 겨울을 이해하였다.

당신과 나는

나와 그는

꽃의 미래를 사랑하였다.

시청각적으로

유장하였다.

 

 

당신과 그는 가로수가 바라볼 수 없을 만큼

화사하고

그와 나는 날아가는 새가 조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변신하고

나와 당신은 유쾌하게 떠들다가

무표정하게 헤어졌다.

 

 

우리는 일에 몰두하거나

고도 15미터 상공에 앉아

전화를 걸었다.

창가에 서서 쓸쓸한 표정으로 바깥을 바라보자

다시 당신이 지나가고

배후에 어지러운 꽃이 피었다.

 

 

 

 

* 정오의 희망곡, 문학과 지성사(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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