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통화권이탈지역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소란한 세상을 닫아건 잎들의 무늬를 읽는다
그대 잠시 두리번, 결락된 감각을 찾는다
소리없는 엽록체의 통화권이탈지역은
동물들의 울음과 이동이 찍히지 않는 영토
이 영역은 우리에게 불가침지역에 해당하며,
소통의 소란은 작은 묵상도 헝클어놓는다
나는 주머니 속의 열쇠를 저 밖으로 던진다
고리가 열리고 날개가 파닥이면 나는 그제사
그들의 이름을 부를 기회를 놓치게 된다
그러므로 리보솜의 머나먼 기억에서 사라진다
산을 식물보호권역 개념으로 집약한다는
뜻밖의 기층 속에서, 영역 밖을 내다본다
서 있는 그림자들이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손바닥의 무언가에 얼굴을 묻고 엿듣고 섰다
나는 이제, 독특한 통화권이탈지역을 갖는다
여기서 그 모든 분란의 소통은 차단되었다
빛은 떠나고, 혼돈이 거니는 어둠 한쪽
완전 통화권이탈지역에서 너와 나는 오래전
서로 잃어버린 것을 조용히 만지고 있다
* 나는 에르덴조 사원에 없다 / 창비, 2010. 5. 31.
……
이 시집에서 우리는 찬란한 득도의 경지에 오른 한 시인의 '소란 속에 정교해진' 시편들을 만난다. 고형렬이 '가장 낮은 밑바닥'에서 정면으로 마주친 세상은 '원래 나의 동물이 인간의 나를 기억'하기 힘들고, '너무 높고 많은 수직'인 아파트에서 뛰어내릴 곳이라곤 발코니뿐인 여자들이 '땅바닥에 철커덕' 떨어지는 곳, 마천루의 '절대 열리지 않는 창가'에 러브체인이 살고 옥수수수염귀뚜라미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80층 승강기가 위용을 자랑하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그는 고통을 '핏속에 담아 감금'하듯 '꼭 하나의 외상'을 남기는 시쓰기를 계속한다. '소란이 없는 곳은 죽은 곳'이기에 '소란을 불러 소란을 쓰고', 스스로를 '계속 변형'하며 '바늘구멍 속의 낙타'가 될 것을 자처한다. '여기서 이름없는 꽃이 피어날'것을 믿고, '결국 새벽에 도착할' 것을 믿기 때문에. 하여 시인은 일상적이고 하잘것없는 존재들 속에서 우주의 이치를 깨닫는다. '돼지 궁둥이'에서 아름다움을 보고, 폭설로 무너진 축사에서 거기 살던 쥐들의 운명을 떠올리고, 러브체인이 '자신을 확장하지 않음'과 달개비가 다년생이 아닌 일년초임을 축하한다. 거미의 시각에서 거미 일가족의 몰살을 생각하고, '짜릿한 살이 떨리는 변기 앞'에서 '무변(無邊)'을 맛보고, 식물의 광합성을 놓고 '빛을 모아들이는 것, 이것이 사랑이다'라고 속삭여준다. 이 살 떨리도록 멋진 시인 덕분에 우리는 '오래전 서로 잃어버린 것을 조용히 만질'수 있는 '통화권이탈지역'으로 들어간다. 얼마나 큰 축복인가!
ㅡ 전승희(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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