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당신을 버렸습니다
ㅡ노무현 전 대통령 영전에 드린다
우리가 당신을 버렸습니다
그건 프로 정치가 아니야, 바보야
진보란 그런 게 아니야!
우리가 당신을 버렸습니다
그건 사이비 민주주의야, 바보야
애국은 그런 게 아니야!
아, 우리가 당신을 버렸습니다
말뿐이던 우리가 텅텅 빈 우리가
허세뿐이던 우리가 당신 손을 뿌리쳤습니다
새벽닭이 울기 전에 열번 스무번 당신을 부인했습니다
그렇게 당신을 버리고 돌아서니
난데없는 철벽이 우리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렇게 당신을 벼랑에 떠밀고 내려다보니
바위 벼랑 아래 처박힌 피투성이 얼굴은
우리의 얼굴이었습니다
운명이었습니다
아, 운명이었습니다
운명은 첫 순간에 종말을 결정해 버렸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권력자는 뜨거운 정의의 감정을 품어서는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순결한 영혼을 동경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려는 짓 따위는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가난한 자를 높이 세우려는 짓 따위에
열정을 품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권력자가 선한 일을 행하고자 한다면
자신을 제거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당신은 이것을 거부함으로써 운명의 비극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당신으로 인해 우리가 알게 되었습니다
이천년 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한 사내의
외침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나의 패배가 여러분의 승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피에 굶주린 자들에게 당신을 먹이로 던지고
피의 잔을 나누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오, 슬픈 선지자의 꿈이여!
당신은 정치가가 아니었습니다
아, 살아서 훌훌 벗어버리고 싶었던 사람이여
다 벗고 인간만 남기고자 했던 사람이여
정치도 벗고 권력도 벗고 모든 권위도 벗고
오직 벌거숭이 인간만 남기려 했던 사람이여
차별 없는 인간만 남겨 조건 없는 사랑을 꿈꾸었던 사람이여
당신의 눈물이 우리들 가슴에 강물처럼 일렁입니다
당신의 눈물이 검은 아스팔트 위에 붉게 출렁입니다
*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추모시집), 정희성 외, 화남, 2009.
……
바로 1년 전인 오늘, 2009년 5월 23일.
퇴임 후, 고향에서 사람과 더불어 보통의 삶을 살고자 했던 당신은 부엉이바위에 몸을 내던지셨지요.
그때의 충격이 사실이 아니길 바라고 또 바래었었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전임 대통령을 그렇게 보내야만 했던, 보낼 수 밖에 없었던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현실이었습니다.
정치적 의미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힘없는 자 앞에 마주 서서 눈높이를 맞추고자 했던 그 마음,
낮은 자를 향해서도 머리를 숙일 수 있었던 그 보통의 인간미 앞에
우리는 한없이 열광했고 미소지을 수 있었습니다.
권력도 버렸던
막걸리 한 잔 건넬 수 있었기에,
그 밀짚모자의 수수함 앞에 그저 좋아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직 대통령들의 쓰라린 뒷모습들을 보았기에
접근할 수 없는 무겁고 높은 성역을 보았기에
그 반대인 당신을 그렇게 그리워하는가 봅니다.
오늘, 서거 1주기를 맞아 비는 당신의 눈물인양 그렇게 그렇게 하염없이 내렸나 봅니다.
그 비가 축복이 되어 척박한 대한민국을 비옥하게 만들어주기를 갈망하지만
현재의 대한민국은 암울하기만 합니다.
연두를 지나 초록에 도달했건만 여전히 서글픈 이유입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고 했던가요?
올곧은 시민으로 바로 걸어가겠습니다.
(여전히 과거로의 귀항을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