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우연히 만난 유명 시인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라고 묻자
그는 일행들에게 농담이나 건넬 뿐
내 쪽으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슬그머니 부아가 치민 나는
술김에 또 지고 싶지 않아서
유명 시인이 되면 묻는 말에 대답 안 하고
그러는 건가 보지?
그렇게 혼잣말처럼 궁시렁거렸던 것인데
이윽고 유명 시인이 한마디했다
시인한테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나는 좀 억울했다
도대체 시인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몰라서
진심으로 물었던 건데
그런 것 좀 자상하게 일러주면 안 되나?
어쩌다 아무런 연고 없이 합석하게 된 술자리에서
그냥 앉아 있기 어색해서
곁에 앉은 여자 시인에게 물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그러자 그 여자 시인이 대답했다
전과 다름없이……
괜한 걸 물었다가
괜히 상처받는 이 버릇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시인에게 근황을 묻지 말자
시인이란 전과 다름없이 지내면서
대답할 필요도 없이 시를 쓰는 사람들이다
* 상처적 체질, 문학과 지성사(20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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