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시소의 감정 [김지녀]

초록여신 2010. 4. 1. 10:05

 

아무것도 자기가 있을 자리에 없는 것, 이것은 무질서

아무것도 자기가 원하는 자리에 없는 것, 이것은 질서

ㅡ 브레히트

 

 

 

 

 

 

 

 

 

 

 

 

 

시소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우리가 일제히 언니, 하고 불렀을 때

비인칭 주어처럼

길어서 다 부를 수 없는 이름처럼

언니는 해석될 필요 없이 거기에 앉아 있다

 

 

등을 돌리고

앉았다 일어섰다 탕! 탕! 날아가는 날들을 향해

돌을 던진다

 

 

언니의 하늘은 올리브색에 가깝다

오래됐군, 페인트 벗겨진 하늘을 팔레트 나이프로 굵어낸다

가루가 되어 쌓이는 오늘의 날씨

조금씩 갈라진 감정의 흰 뼈들

 

 

낙천적이거나 비관적인 저녁 쪽으로

우리는 두껍게 하늘을 덧칠한다

차가운 동상(銅像)으로 언니를 기념한다

 

 

언니는 과묵하고 무심하고 작기도 한데

모랫바닥을 글자들로 구겨 놓고

어디로 가고 있을까

 

 

우리는 왜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을까

 

 

 

 

* 시소의 감정, 민음사(2009)

 

 

'詩다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슬픔이 너무 큰 날은 [김경미]  (0) 2010.04.05
지구의 속도 [김지녀]  (0) 2010.04.02
나는 국경꽃집이 되었다 [김중일]  (0) 2010.04.01
샘 [박남희]  (0) 2010.03.29
머리카락의 자서전 [박남희]  (0) 2010.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