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는 손이 괄호 쳐둔 것들이 너무 많다
( )는 바깥에 있는 것들을 안에 가두는 기표 같지만
자세히 보면 바깥이 안에 있는 것들을 꺼내려는 기표다
나는 총각시절 아내를 괄호 쳐두고
몇 날 며칠을 생각하다가
아내를 괄호 밖으로 꺼내서 결혼을 하였다
소중한 것일수록
한번은 괄호 쳐두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인데
어쩐 일인지 괄호 밖에 있는 것들은
괄호 안에 있는 것들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신은 우주에 해와 달을 띄워놓고
그 안에 너무 많은 것들을 괄호 쳐 놓았다
사람들은 음양오행이나 사주로
괄호 안에 갇힌 것들의 비밀을 알고 싶어 하지만
지평선이나 수평선은 신이 쳐놓은 한쪽 괄호만
슬쩍슬쩍 보여줄 뿐
그 안에 갇힌 것들의 실체를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다
나는 신혼 시절 아내를 괄호로 느끼면서
아내의 골화 속에 있는 것들을 꺼내보려고
해와 달이 여러 번 떴다 지는 것을 바라보았지만
아내의 괄호는 끝내 열리지 않았다
나는 그 이유를 한참 세상을 더 살고서야 알았다
아내는 한쪽 괄호밖에 가지고 있지 않아서
다른 한쪽 괄호는 끝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하여 사랑이란
한쪽 괄호가 또 다른 쪽 괄호를 만나
스스로 그 안에 은밀한 것들을 가두고
괄호 밖의 손에게 해와 달 모양의 열쇠를
훌쩍, 넘겨주는 일이라는 것을
* 고장 난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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