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사랑은 구름의 일 [박남희]

초록여신 2010. 3. 16. 10:23

 

 

 

 

 

 

 

 

 

 

 

 

구름은 너무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위험하다

그럴 때 구름이 안개가 되려는 발상은 더욱 더 위험하다

안개는 지워야 할 것과

지워서는 안 될 것을 쉽게 구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구름은 그냥 구름이면 된다

그러므로 나는 그냥 나이면 된다 구름 사이로

첫사랑이 지나갔다고 말하는 것은 이제 모두 옛일이다

구름은 늘 무언가 쏟아내야 할 말들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구름 곁에 구름을 세워두는 일

구름과 구름이 만나 빗줄기를 쏟아내는 일

천지에 천둥과 번개를 가득 채우는 일

 

 

그런 계절을 그냥 여름이라고만 말해서는 안된다

뜨겁다고 축축하다고 다 여름은 아니니까

그러므로 여름이 비를 몰고 온 건 아니다

그건 모두 알 수 없는 구름의 일

 

 

가령 꽃 같은 것이 문득 구름을 아무데나

우두커니 세워두는 일을

계절의 언어로는 쉽게 해명할 수 없다

 

 

구름 밑의 흙이 축축해지는 것도 구름의 일

그러니까 사랑은 구름의 일

 

 

그 후에도 구름은 종종

그곳에 빗줄기를 오래 세워둔 적이 있다

 

 

 

 

* 고장 난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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