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혈거시대를 지나온 화살이
지금도 허공을 날아가고 있어요
그동안 수많은 피를 흘리게 한 화살이
허공에 동굴을 파며 날아가고 있어요
저것은 누구의 화살일까요?
저 동굴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멧돼지 같은 짐승일까요?
물빛 맑은 호수일까요? 먹구름일까요?
동굴을 살려주세요
동굴 속에 살던 이름들을 살려주세요
그 이름들이 끌고 세상으로 뻗어나간
길들을 살려주세요
허공을 날아가는 화살이 거느리고 있는
순간순간의 바람을 살려주세요
화살이 뚫어놓은 동굴 속에는
호랑이도 곰도 없는데 웬일인지
아주 오래된 이야기라도 하나 거느리려는 듯
자꾸만 웅웅거리는 저 울음을,
살려주세요
아파트도 타워팰리스도 없이
동굴 하나로 여태껏 살아가는
이 땅의 가난한 웅녀를 살려주세요
어둠이 전 재산이었던 저 가엾은 동굴을,
* 고장 난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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