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은 이미 지나온 곳으로 가지 않나니
또 한 해가 갈 것 같은 시월쯤이면
문득 나는 눈시울이 붉어지네
사랑했던가 아팠던가
목숨을 걸고 고백했던 시절도 지나고
지금은 다만
세상으로 내가 아픈 시절
저녁은 빨리 오고
슬픔을 아는 자는 황혼을 보네
울혈 든 데 많은 하늘에서
가는 실 같은 바람이 불어오느니
국화꽃 그림자가 창에 어리고
향기는 번져 노을이 스네
꽃 같은 잎 같은 뿌리 같은
인연들을 생각하거니
귀가 서럽네
* 귀가 서럽다 / 창비, 2010. 1. 25.
웬 절창이 이리도 많노!
이것들과 함께 지낸 며칠, 아무리 바빠 날뛰는 팔자라도 통 아깝지 않았다. 아니, 황송한 며칠이었다.
대흠! 나 오도가도 못하게 그대로 하여 아프고 아팠다. 지난날의 청천강 저쪽에 백석의 절제가 새겨지고 이로부터 남에 대흠 그대의 진솔이 들끓는다. 오늘맞ㄴ이 아니다. 내일도 모레도 '고랑고랑 이랑이랑' 그대의 시가 있겠다.
과연 한 번쯤으로 읽고 나서 덮지 못한다. 열 번을 한 번으로 쳐야 한다. 서울의 시 못 당하겠다. 이런 시, 이런 시인과 손 흔들며 헤어져본 적 있으니 영광 아니랴.
ㅡ 고은(시인)
이대흠 시인의 시집은 연민의 기척들로 가득하다. 저녁이란 '손바닥에도 물무늬'가 생기고 문장에 가득 '알이 슬 때'라고 고백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급하게 읽느라, 이 시들의 기척을 그냥 지나칠지도 모른다는 아찔함에 그건 어쩐지 내 생에 커다란 실례를 범하는 일 같아서 나는 되도록 오래 이 시집을 앓고 싶었다. 그가 연민으로 불러들인 기척은 '모조리 젖으로 와서' 그에게 시가 되었구나! 이 시집으로 한동안 '환지통'을 앓겠구나 생각했다. 사람이 연민으로 기울어질 때 '울고 있는 몸은 검어진다'는 창백한 진술은 우리를 얼마나 오래 이불 속에서 뒤척거리게 하는가.
'봄이 하늘이 아닌 바닥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문자의 기척들은 얼마나 물이 올라서 단단한 돌멩이들이 되어갔는가. '고름 든 새의 다리에 입을 가만 대보는 물'의 시간 가까이에서 이 시들은 분명 자신의 눈을 스스로 만들며 태어났을 것이다. 보지 못할 것이 많은 세상과, 보지도 못한 채 지나가는 세상의 슬픈 명랑을 '맨발로 돌아가는 게 두려워' 나는 이 '아름다운 위반'들을 그가 만든 문장의 연둣물이라고 부르련다. 사람들아! 알랑가는 몰겄다마는.
ㅡ 김경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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