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광합성에 대한 긍정의 시 [고형렬]

초록여신 2010. 2. 1. 09:52

광합성에 대한 긍정의 시

ㅡ 먼지야, 자니?

 

 

 

 

 

 

 

 

 

 

빛을 모아들이는 것, 이것이 사랑이다

동전만한 잎사귀의 멍들, 그곳에 각자의 원을 그려대는 것

이 동작의, 복습의 유희성

화법을 배워라 누군가 말했지, 장기를 둘 때 장기를 말하지 않는다

사랑할 땐 사랑이란 말 절대 하지 마

 

 

광합성만 열심히 하면 돼

간지럽지? 하지만 절대 널 다치게 광합성하진 않아

걱정하지 마 편히 누워, 그리고 눈감고 느껴, 그리고 한없이 낮아져라

그렇게 사라지면 되는 거야, 넌 그때 이미 무언가가 되어 있어,

물론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무엇이지만

그 이름은 나도 몰라,

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무엇이지

없어졌다 사라졌다 변형됐다 이런 의심은 가지지 마 제발

 

 

넌 너무나 많은 시간 속에서 기다림 속에서

변형되어 왔던 게야, 그게 너야 그게 현재고 너의 내일이야

한없는 금속의 물방울수레바퀴를 타면서, 한없이 고개를 넘으면서 다른

꿈이 되어 다른 몸이 되고 다른 마음이 되면서

다른 시간 속을, 찾아올 수 없는 망각 속에서 그리고

그리고, 어떻게 문장을 이어가야 할지 나도 몰라

다른 계절 속에서 음, 그리고 또 노래가 되고, 물이 되고, 공기가 되면서

넌 알지? 난 이제 너를

가르치지 않을 거야

 

 

다만 광합성에 대해서 꿈꾸고 있어, 잊지마 나를

나는 어디 가 있나 묻지 마, 사랑은 묻지 않아 지금은

한겨울, 길이 얼어 붙었지만

광합성의 부드러운 노래는 이미 시작됐지

 

 

나는 지금, 그 소리에 취해 아무것도 못할 지경이야 이명이야, 소란이야

나는 마른 잎의 귓볼의 소리를 끌며 어디론가 이미 떠났어,

 

 

통과하지 않은 것들의 세포만이 저 찬란한 허공 줄기 속에 걸려 빛나고 있어 디엔에이처럼

먼지야 자니? 입사점(入射點)의 햇살들이다

 

 

 

 * 장기를 둘 때 말하지 않는다: 아르헨티나의 시인이며 소설가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명언

 

 

 

* 시작, 2009년 봄호.

* 문학집배원, <문태준의 시배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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