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대패삼겹살 [김기택]

초록여신 2010. 1. 28. 09:55

 

 

 

 

 

 

 

 

 

 

대패로 깎아 무얼 만들겠다는 거지?

100% 돼지로 만든 식탁

삼겹살과 핏줄과 신경의 무늬가 생생한 책장과 장롱

숨 쉬는 통돼지로 기둥을 세우고 벽을 만들어

친환경이라는 목조주택

신문에 끼어 온 전단지에서 본 그 광고들인가?

 

 

전기톱은 깊은 숲으로 가서

아름드리 라지화이트종 한 마리를 골라 베었겠네

잎과 가지가 다 흔들리도록 비명을 지르다

그루터기만 남기고 돼지는 풀썩 쓰러졌겠네

고소한 비린내가 나무향이 되도록

사방으로 튀던 피와 비명이 무늬목이 되도록

얼마나 오랫동안

대패는 그 돼지를 쓰다듬고 핥으며 길들였을까

 

 

건강에는 역시 채식이 최고야

성인병도 예방하고 환경도 살리는 웰빙 음식 아닌가

가구나 집이 지겨워지면

미련 없이 부수어 불판 위에 올리게

구워지면서 나무는 비로소 돼지고기가 된다네

참 오래 살고 볼 일이구먼

이 생생한 삼겹 나이테 좀 보게

이토록 완벽한 돼지고기맛 퓨전 채식을 먹게 되리라고

예전에 누가 꿈이라도 꾸어보았겠나

 

 

 

 

* 2010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역대 수상시인 근작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