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보험 공단에서
생애전환기의 건강검진통보를 보내왔다
환승역에 닿아서 겨우 종이 한 장 받은 기분이다
겨우 몇 걸음 걸었을 뿐인데
어디로 갈아타야 할지 모르는데
발부터 머리꼭대기까지 잔뜩 긴장해서
통보서를 오래 들여다보았다
무서운 병명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위꽃, 유방꽃, 자궁경부꽃, 당뇨꽃, 빈혈꽃, 폐결핵꽃, 정신질환꽃,
끝에 꽃을 붙이니
더 무서운 생각이 들어 정신이 번쩍 든다
꽃의 짧은 생애
붉고 아름다운 꽃의 투구와 방패를 뒤집어쓰고
생애전환기를 건너야 한다
건너는 것도 오르는 것도 갈아타는 것도
어쨌든 한 생애를 굴러다니는 일
무 자르듯 딱 생애전환기라니!
어떤 절벽에서 어떤 절벽으로 뛰어내리는 건지
허공에서 바닥인지, 바닥에서 허공인지
그 경계를 지우느라
마음이 당신에게 달려가는 줄도 모르고,
1분1초가 내겐 생애전환기라는 것을
저 꽃이 다 아는데
저 새가 다 아는데
저 바람이 다 아는데
병(病)의 기원이 적힌 흰 종이 속의 꽃밭
꽃과 고통의 얼굴이 서로를 통과하고 있다
박서영
경남 고성 출생. 199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가 있다.
* 시에 2009년 가을호, 시와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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