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세상에서 가장 긴 나무의 오후 [신영배]

초록여신 2009. 8. 6. 23:41

 

 

 

 

 

 

 

 

 

 

 

하루 종일 내 긴 머리카락으로

당신들의 책상을 훔쳤어요

당신들은 꼬리를 서랍 속에 넣고 닫고

하루 종일 내 긴 머리카락으로

당신들의 구두를 치웠어요

당신들은 혀를 여기저기 흘리고 밟고

내 목이 바닥으로 길게 늘어진 오후

서랍에서 꼬리가 빠져나오고

바닥에서 혀가 쑥쑥 자라나요

 

 

내 그림자는 세상에서 가장 긴 나무의 오후

 

 

빌딩 속에서 나무가 일어선다

길게 그림자가 뻗는다

유리창을 통과하고 도시를 덮는다

그림자 속에서 새가 날고

그림자 속에서 강이 흐르고

그림자 속에서 바람이 불고

나무 그림자는 동시에 새 그림자

새 그림자는 동시에 강 그림자

강 그림자는 동시에 바람

 

 

오후의 머리카락이 지평선까지 풀리다

지평선 위에 흐르는 새

지평선 위에 나는 강

지평선 위에 바람

 

 

빌딩 속에서 책상들이 나무를 자른다

눈이 아래로 떨어지는 나무는

지평선을 거둔다

 

 

유리창으로 날아드는 구두

유리창으로 달라붙는 혀

유리창으로 뛰어드는 꼬리

 

 

검고 붉은 창가에서

 

 

나무의 오후

 

 

 

 

 

* 세상에서 가장 긴 나무의 오후 / 문학과지성사, 2009. 7. 24.

 

 

.......

그동안의 고요을 깨고 일상으로 복귀하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긴 휴가는 자연 속에서 인공의 터치를 전혀 느끼지 않는 것이리라 믿으며...

그 자연의 품에서 얻은 풍성한 것들을 마음껏 먹으며 지냈던 하늘 아래 일 번지는 낙원이였습니다.

(다시 일상- 오후의 품으로, 초록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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