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섶섬이 보이는 방 [나희덕]

초록여신 2009. 8. 8. 03:02

 

섶섬이 보이는 방

이중섭의 방에 와서

 

 

 

 

 

 

 

 

 

 

 

 

서귀포 언덕 위 초가 한 채

귀퉁이 고방을 얻어

아고리와 발가락군*을 아이들을 키우며 살았다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찰,

방보다는 차라리 관에 가까운 그 방에서

게와 조개를 잡아먹으며 살았다

아이들이 해변에서 묻혀온 모래알이 버석거려도

밤이면 식구들의 살을 부드럽게 끌어안아

조개껍질처럼 입을 다물던 방,

게를 삶아먹은 게 미안해 게를 그리는 아고리와

소라껍질을 그릇 삼아 상을 차리는 발가락군이

서로의 몸을 끌어안던 석회질의 방,

방이 너무 좁아서 그들은

하늘로 가는 사다리를 높이 가질 수 있었다

꿈속에서나 그림 속에서

아이들은 새를 타고 날아다니고

복숭아는 마치 하늘의 것처럼 탐스러웠다

총소리도 거기까지는 따라오지 못했다

섶섬이 보이는 이 마당에 서서

서러운 햇빛에 눈부셔한 날 많았더라도

은박지 속의 바다와 하늘,

게와 물고기는 아이들과 해 질 때까지 놀았다

게가 아이의 잠지를 물고

아이는 물고기의 꼬리를 잡고

물고기는 아고리의 손에서 파닥거리던 바닷가,

그 행복조차 길지 못하리라는 걸

아고리와 발가락군은 알지 못한 채 살았다

빈 조개껍질에 세 든 소라게처럼

 

 

 

 

 

-----------------------------------------

* 화가 이중섭과 그의 아내가 서로를 부르던 애칭.

 

 

 

 

 

* 야생사과, 창비(2009.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