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소울 메이트 [이근화]

초록여신 2009. 7. 6. 07:23

 

 

 

 

 

 

 

 

 

 

 

우리는 이 세계가 좋아서

골목에 서서 비를 맞는다

젖을 줄 알면서

옷을 다 챙겨 입고

 

 

지상으로 떨어지면서 잃어버렸던

비의 기억을 되돌려주기 위해

흠뻑 젖을 때까지

흰 장르가 될 때까지

비의 감정을 배운다

 

 

단지 이 세계가 좋아서

비의 기억으로 골목이 넘치고

비의 나쁜 기억으로

발이 퉁퉁 붇는다

 

 

외투를 입고 구두끈을 고쳐 맨다

우리는 우리가 좋을 세계에서

흠뻑 젖을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골목에 서서 비의 냄새를 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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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화

 시인 이근화는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나 단국대학교 국문학과와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2004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단에 나왔으며 시집으로 『칸트의 동물원』이 있다. 제4회 윤동주상(2009) 젊은작가상 부문을 수상했다.

 

 

 

 

* 우리들의 진화 / 문학과지성사, 2009. 6. 24.

 

 

 

 "우리"는 같은 취향, 같은 감정을 소유한 공동체 혹은, 마음의 친구이자 동조자이다. 골목에 서서 비를 맞는 것을 좋아하는 특이한 정서 역시, "우리"라는 '소울 메이트'가 공유한 세계이다. 이 특이한 감정 혹은 취향의 공동체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그 결속력이 가지는 진정성의 무게가 공감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들'이 '배우려는' "비의 감정"이란 아주 모호한 대상이다. '비가 온다'라는 문장에서 주어지는 비인칭의 영역에 속한다. 부정(不定)의 대명사를 주체로 하기 때문이다. 다른 방식으로 말한다면, '비에 대한 감정'과 "비의 감정"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비의 감정"은 비인칭의 감정이며, 비인칭은 감정과 판단의 주체가 될 수 없다. "비의 기억"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비에 대한 기억'이라면 몰라도, 비인칭은 "정" "비의 기억"이 비인칭적인 세계에 속하기 때문에, 이 시에서 취향과 감정의 공동체는 아주 불안한 지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다른 맥락에서 말한다면, "우리는 이 세계가 좋아서"라는 문장에서 "세계"는 아주 모호한 대상이다. 그것은 지나치게 넓거나 지나치게 불문명하다. "우리가 좋을 세계"라는 말 역시 그러하다. 여기에서 불쑥 튀어나온 이상한 단어 하나에 주목하자. "흰 장르"라는 단어가 그것이다. 이질적이고 돌발벅인 시어는 흥미롭게도 이 시의 언어 혹은 감각이 지향하는 어떤 지점을 암시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장르에는 장르의 문법과 규칙이 있고, 그것은 장르에 대한 대중의 기대에 의해 구축된 것이다. 그런데 "흰 장르"라니? 그것은 장르이되, 장르가 아닌 것, 혹은 감정이되 감정이 아닌 감각에 해당한다. 여기서 '우리'라는 감정의 동질성을 업고 있는 서정 장르의 내면성은 "흰 장르"처럼 표백된다. 그래서 "비의 감정"을 '표백된 감정'이라고 부르는 것도 가능하다.

ㅡ이광호,  해설 <진화하는 우리들의, 명랑하고 모호한 감정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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