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마늘을 까면서 엄마가 웃는다
발톱 같지 않아?
껍질이 불고 알맹이가 붉고 손톱이 불고
불은 손톱은 자르기에도 좋네
오십 포기 김장 후에
찬물에 손을 담그고 있던 엄마는 사라졌다
소금을 넣었는지 설탕을 넣었는지
오늘 저녁 밥상은 불균형과 부조화 속에서
모두들 웃고 있네
발톱이 살 속을 파고드네
고백 같지 않아?
주름 치마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다리를 모으던 시절에는 몰랐어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엄마는 우아했지
퀵 턴 퀵 턴 하던 엄마에게
오렌지 나무의 오렌지를
레몬 나무의 레몬을
따주고 싶었어
운동자의 엄마는
시계탑의 엄마는
트랙을 이해할까
오른발과 왼발에
똑같이 힘을 주고
바람의 표정을 나무에게 돌려주러
태양의 관심을 해체하러
우아하게 고개를 들고
턱을 당기고
어깨를 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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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화
시인 이근화는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나 단국대학교 국문과와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2004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단에 나왔으며 시집으로 『칸트의 동뭘원』이 있다. 제4회 윤동주상(2009) 젊은작가상 부문을 수상했다.
* 우리들의 진화 /문학과지성사, 2009. 6. 24.
당신이 만약 이근화 시의 모호한 명랑함, 혹은 비인칭적인 감정의 투명함에 매료되었다면, 이제 그 매혹의 뒤편에 있는 불안과 공포에 대해서도 말해야 한다. 태연하고 무심한 어조 사이에서 언뜻 번뜩이는 불갈함이라면 가령 이런 것이다. 다정하고 달콤한 목소리 사이에서 피할 수 없이 마주해야 하는 존재의 부조리함, 혹은 더할 수 없이 경쾌하고 투명한 공포의 아름다움. 이 무섭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요약할 만한 어떤 단어도 찾지 못했다면, 그건 시인의 책임도, 당신의 책임도 아니다. 비인칭의 공간 속으로 가볍게 흩어져버린 언어에서 '우리의 감정'은 이상한 방식의 '진화'를 경험한다.
ㅡ시집 소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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