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덧칠 [허연]

초록여신 2009. 6. 5. 07:19

 

덧칠

ㅡ 도쿄 통신 1

 

 

 

 

 

 

 

 

 

 

 

 덧칠하면서 사는 나이다. 낡은 목선에 켜켜이 붙어있는 페인트의 잔해가 더 이상 쉽게 보이지 않는다. 씻겨나간 시간 위에 칠해진 것들은 목선 위에 들러붙어 지층이 됐다. 비둘기보다 까마귀가 더 많은 나라에서 '트라우마' 운운하는 편지를 몇 번이나 읽는다. 뭔가 뜨거운 게 치밀어 올라온다. 난 오늘 또 그렇게 덧칠을 시작했다.

 

 

 머리는 사랑을 기억하지 않는다.

 지층만이 사랑을 기억한다. 지층 속에서 근육이 눈물을 흘린다. 지층의 구석구석에 내가 있다. 내 근육이 있다.

 

 

 오늘도 짠물에 씻겨나가지 못한 것들이 울퉁불퉁 남아 지층이 된다.

 

 

 

 

 

* 시에 2009년 여름호, 시와 에세이.

 

 

'詩다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겹살에 대한 명상 [고영]  (0) 2009.06.06
인생은 하수다 [허연]  (0) 2009.06.05
지퍼를 이해하는 법 [박남희]  (0) 2009.06.05
사연 [함민복]  (0) 2009.06.05
무량수전 [문인수]  (0) 2009.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