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늙은 느티나무는 하숙생 구함이라는 팻말을 걸고 있다
한때 저 느티나무에는 수십 개의 방이 있었다
온갖 바람빨래 잔가지 많은 반찬으로 사람들이 넘쳐났다
수많은 길들이 흘러와 저곳에서 줄기와 가지로 뻗어나갔다
그런데 발빠른 늑대의 시간들이 유행을 낚아채 달아나고
길 건너 유리로 된 새 빌딩이 노을도 데려가고
곁의 전봇대마저 허공의 근저당을 요구하는 요즘
하숙집 문 닫을 날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 지금은
느티나무 아래 평상을 놓고 틱틱 끌리는 슬리퍼, 런닝구,
까딱거리는 부채, 이런 가까운 것들의 그늘하숙이나 칠 뿐
* 여우 / 문학동네, 2009. 3. 12.
늙은 느티나무의 몸에 달라붙어 있던 '시간'이 사라져가는 형식을 통해 한 시대의 찬연한 묵시를 보여주는 이 시편은, 이제는 사라져버린 "온갖 바람빨래 잔가지 많은 반찬으로 사람들이 넘쳐났"던 시간을 마치 흑백사진처럼 선명하고도 흐릿하게 담아낸다. 이때 '사진'이야말로, 시인의 말처럼, "순간들의 데스마스크를 뜨는 즐거운 놀이"(「음화(negative)」)로 다가오는 것이 된다.
이제 그 "수많은 길들이 흘러와 저곳에서 줄기와 가지로 뻗어나갔"던 시절은 사라져가고, "발빠른 늑대의 시간들"조차 유행처럼 흘러가고, 빌딩들이 노을도 데려간 시간 뒤로 사람들의 발길도 끊겼다. 다만 느티나무 아래로는 "틱틱 끌리는 슬리퍼, 런닝구,/까딱거리는 부채"들만 "그늘하숙"을 치고 있을 뿐이다. 한때 "수십 개의 방"으로 웅성거리던 그 '젊은 느티나무'는, 마치 음예(陰翳)처럼 늙은 그늘을 치면서 가혹한 시간 안쪽에 버려진 사물의 소멸과정을 묵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류인서 시편들은 모든 사물과 내면의 흐름들, 예컨대 사랑의 양면적 속성이나 한시적 시간을 견뎌가다가 궁극에는 소멸의 얼룩을 몸속에 남긴 채 사라져가는 사물들의 존재방식을 통해, 선명하고도 희미한 감각의 묵시록을 아름답게 펼쳐내고 있다.
ㅡ해설 [감각의 묵시록] 중에서 발췌,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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