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목련에 기대어 [고영민]

초록여신 2009. 3. 10. 08:37

 

 

 

 

 

 

 

 

 

 

 

활짝 핀 목련꽃을 표현하고 싶어

온종일 목련나무 밑을 서성였네

하지만 봄에 면해 있는 목련꽃을 다 표현할 수 없네

 

 

목련꽃을 쓰는 동안 목련꽃은 지고

목련꽃을 말해보는 동안

목련꽃은 목련꽃을 건너

캄캄한 제 방(房)에 들어

천천히

귀가 멀고 눈이 멀고

 

 

휘어드는 햇살을 따라

목련꽃 그림자가 한번쯤 내 얼굴을 더듬을 때

목련꽃은 어디로 가는 걸까

 

 

이 봄 내내 나는 목련꽃을 쓸 수도

말할 수도 없이

그저 꽃 다음에 올 것들에 대해

막막히 생각해보는데

 

 

목련꽃은 먼 징검다리 같은 그 꽃잎을 지나,

적막의 환한 문턱을 지나

어디로 가고

말라버린 그림자만 후두둑,

검게 져내리는가

 

 

 

 

 

* 공손한 손, 창비(2009. 1)

 

 

 

'詩다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래기 [도종환]  (0) 2009.03.10
지상의 방 한 칸 [안도현]  (0) 2009.03.10
간장 달이는 냄새가 진동하는 저녁 [장석주]  (0) 2009.03.09
처음 가는 길 [도종환]  (0) 2009.03.09
봄 비 [안도현]  (0) 2009.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