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다움

라일락 향기

초록여신 2009. 3. 3. 03:38

 

 

 

 

 

 

 

 

라일락 향기


자네가 심어놓은
저 라일락 나무에서
꽃이 많이 피길 빌겠네.
자네가 심어놓았지만 꽃이 피면
모두가 즐거운 세상이 되는 법이니 말이야.
라일락 향기처럼 멀리 가는 꽃도 없을 거야.
담 너머로 라일락이 피어 있는 골목길을 걸어가면
가끔 꿈속을 걸어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해.


- 김영현의《라일락 향기》중에서 -

 

 

* 고도원의 아침편지.

 

 

 

.......

8년 전인가 살았던 옥탑방은 참 아담했었다.

주인아주머니와 아저씨의 부지런함이 묻어나던 집이었다.

화장실을 1층으로 내려와야만 했던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 옥탑방에서 바라본 하늘은 그저 꿈만 같았다.

그곳은 오로지 나만의 세상이였으니까.

그곳에서 마셨던 시원한 맥주 또한 기가 막혔다.

너무나 더워 지붕에 물을 뿌려대던 아련한 기억들

귀퉁이에 다리를 걸치고 앉아서 문자를 주고받던,

밤샘 폰 통화를 해도 즐겁던,

돗자리 깔고 누워서 하늘의 별을 온통 내 품안에 품었던,

무엇보다도 오래된 라일락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던 그 향기는 아직도 코끝을 맴돌 정도다.

퇴근할 때마다 먼 곳에서부터 뿜어져 오던 그 향기는 나를 부르던 엄마의 목소리자 에너지였다.

5년은 넘게 정들었던 그곳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재개발 그 자체였다.

아쉬움에 주인아주머니와 아저씨는 다른 이사하는 곳까지 함께 가자고 했지만,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몇 년 전 그곳을 지날 일이 있었는데 이제는 내가 살던 주택은 그 옥탑방은 사라지고 없었다.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 아파트만이 나를 내려다 보고 서 있었다.

향기를 내뿜던 아름드리 라일락 나무도 사라지고 없었다.

더 이상 라일락 향기를 맡을 수 없었다.

오로지 그 라일락 향기는 내 과거 속에서만 존재하고 있었다.

사라지는 것들의 목록에 또 하나를 더하며 너무나 슬펐다.

삶이라는 이런 것이겠지.

사라지는 것들의 목록의 무게가 차츰 무거워진다는 것...

아,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의 현재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가끔, 추억만 한다.

(그때의 라일락 향기에 취해서, 초록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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