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시인 70인

강그라 가르추 [정끝별]

초록여신 2009. 2. 9. 12:24

 

 

 

 

 

 

 

 

 

 

한밤을 가자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은

흰 밤을 맨발로 달려가자 모든 죄를 싣고

검은 야크의 눈에 서른 개의 달을 싣고

 

 

강그라 가르추를 가자 가다 갇히면

덧창문 안으로 강된장을 끓이며 몇 날 며칠

오랜 슬픔에 씨앗만 해진 두 입술로

뭉쳐진 밥알을 나누며 숨죽이며 가자

 

 

얼음 냄새 밴 발꿈치를 어루만지며

몇 날 며칠을 가자 버리고 도망 온 것들이

가랑가랑 뜨물처럼 갈앉는 꿈에서야

눈보라에 튼 붉은 뺨을 씻으며

 

 

처마 밑 고드름 녹는 소리에

겨울 순무의 푸른 귀가 돋는 곳으로

가자 도망 온 것들이 그리워지는 곳으로

가까스로 도망 온 도망갈 곳으로 가자

 

 

강그라지듯 가자 몇 날 며칠을 하염없이

너라는 천산산맥 나라는 만년설산을 넘어

가도 가도 강그라 가르추를 다시 넘어

 

 

 

 

 

* 현대문학 55주년 기념 연재(월, 수, 금 연재) / 한국대표시인 70인 - 시, 사랑에 빠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