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시인 70인

내 머리카락에 잠든 물결 [김경주]

초록여신 2009. 2. 7. 21:28

 

 

 

 

 

 

 

 

 

 

 

 한번은 쓰다듬고

 한번은 쓸려간다

 

 

 검은 모래해변에 쓸려온 흰 고래

 

 

 내가 지닌 가장 아름다운 지갑엔 고래의 향유가 흘러 있고 내가 지닌 가장 오래된 표정은 아무도 없는 해변의 녹슨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씹어 먹던 사과의 맛

 

 

 방 안에 누워 그대가 내 머리칼들을 쓸어내려주면 그대의 손가락 사이로 파도 소리가 난다 나는 그대의 손바닥에 가라앉는 고래의 표정으로 숨쉬는 법을 처음 배우는 머리카락들, 해변에 누워 있는데 내가 지닌 가장 쓸쓸한 지갑에서 부드러운 고래 두 마리 흘러나온다 감은 눈이 감은 눈으로 와 비빈다 서로의 해안을 열고 들어가 물거품을 일으킨다

 

 

 어떤 적요는

 누군가의 음모마저도 사랑하고 싶다

 그 깊은 음모에도 내 입술은 닿아 있어

 이번 생은 머리칼을 지갑에 나누어 가지지만

 마중 나가는 일에는

 질식하지 않기로

 

 

 해변으로 떠내려온 물색의 별자리가 휘고 있다

 

 

 

 

 

* 현대문학 55주년 기념 연재(월, 수, 금 연재) / 한국대표시인 70인 - 시, 사랑에 빠지다

 

 

   2009. 0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