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시인 70인

웃음이 걸어오고 있다 [김기택]

초록여신 2009. 2. 6. 21:55

 

 

 

 

 

 

 

 

 

 

이제 막 걷기 시작한 네가 걸어오고 있다

웃음을 가득 담은

작은 눈 작은 입 작은 얼굴이 오고 있다

작은 얼굴에 꼭 맞는

이 없는 웃음이 오고 있다

삶이 다 들어가기에는 터무니없이 작은 얼굴

작은 팔 작은 다리가 오고 있다

그 팔다리에 꼭 맞는 옷과 신발이 오고 있다

 

 

지금 내게 오고 있는 웃음은

얼마 전까지 다른 얼굴이 웃었던 웃음

있는 힘을 다해 눈물을 삼키던 얼굴이 웃었던 웃음

 

 

아기 얼굴 속에서 겨우 웃음만 남은 네가

옛 친구를 알아보았다는 듯이

죽은 후 처음이라 너무나 반갑다는 듯이 웃으며

한때 이 세상에서 얼굴을 가졌던 이들의 모든 웃음을

작은 얼굴에 다 담아 웃으며

아장아장 나에게 걸어오고 있다

 

 

네 죽음을 따라 함께 화장되었던 웃음이

환한 아기 얼굴을 새 옷처럼 입고

뒤뚱뒤뚱 나에게 걸어오고 있다

 

 

 

 

* 현대문학 55주년 기념 연재(월, 수, 금 연재) / 한국대표시인 70인 - 시, 사랑에 빠지다

 

 

   2009. .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