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걷기 시작한 네가 걸어오고 있다
웃음을 가득 담은
작은 눈 작은 입 작은 얼굴이 오고 있다
작은 얼굴에 꼭 맞는
이 없는 웃음이 오고 있다
삶이 다 들어가기에는 터무니없이 작은 얼굴
작은 팔 작은 다리가 오고 있다
그 팔다리에 꼭 맞는 옷과 신발이 오고 있다
지금 내게 오고 있는 웃음은
얼마 전까지 다른 얼굴이 웃었던 웃음
있는 힘을 다해 눈물을 삼키던 얼굴이 웃었던 웃음
아기 얼굴 속에서 겨우 웃음만 남은 네가
옛 친구를 알아보았다는 듯이
죽은 후 처음이라 너무나 반갑다는 듯이 웃으며
한때 이 세상에서 얼굴을 가졌던 이들의 모든 웃음을
작은 얼굴에 다 담아 웃으며
아장아장 나에게 걸어오고 있다
네 죽음을 따라 함께 화장되었던 웃음이
환한 아기 얼굴을 새 옷처럼 입고
뒤뚱뒤뚱 나에게 걸어오고 있다
* 현대문학 55주년 기념 연재(월, 수, 금 연재) / 한국대표시인 70인 - 시, 사랑에 빠지다
2009.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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