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화살 [고형렬]

초록여신 2008. 12. 16. 04:13

 

 

 

 

 

 

 

 

 

 세상은 조용한데 누가 쏘았는지 모를 화살 하나가 책상 위에 떨어져 있다.

 누가 나에게 화살을 쏜 것일까.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화살은 단단하고 짧고 검고 작았다. 새 깃털 끝에 촉은 검은 쇠. 인간의 몸엔 얼마든지 박힐 것 같다.

 나는 화살을 들고 서서 어떤 알지 못할 슬픔에 잠긴다.

 

 

 심장에 박히는 닭똥만한 촉이 무서워진다. 숨이 막히고 심장이 아파왔다.

 ㅡ 혹 이것은 사람들이 대개, 장난삼아 하늘로 쏘는 화살이, 내 책상에 잘못 떨어진 것인지도 몰라!

 

 

 

* 김포 운호가든집에서, 창비(2001)

* 아침의 시 저녁의 노래, 삼인(2008)

 

 

 

 

.......

 주위를 둘러보면 상처 입힌 자는 없고 상처 받은 자들로 가득하다. 보드라운 새 깃털 끝에 검은 쇠로 된 촉이 박힌 화살 모양을 보라. 그래서 화살을 던지는 자와 맞는 자가 서로 다른 느낌을 갖게 되는 게 아닌지. 불현듯 내 책상 위에 떨어져 있는 화살 하나. 화살에 직접 맞지 않고도 "알지 못할 슬픔"에 잠기는 것은 그 어쩔 수 없는 엇갈림 때문인지 모른다. (나희덕)

 

 

 

 

 잠시 현재를 벗어납니다.

 치열한 삶에서 잠시, 휴식 중인 엄마를 뵈러 갑니다.

 또한 아버지의 뒤바뀌어진 삶을 돌아보고 오렵니다.

 나 또한 누군가의 가슴에 화살을 하나 비수마냥 꽂아두었는지 모릅니다.

 내 가슴에 닿았던 저 화살처럼

 화살 또한 돌고 돌고 돌고 그래서 화살나무로 굳히어지기도 하겠지요.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는,

 과감히 뽑아내는 사람만이 그 화살을 인간의 심장이 아닌 누군가의 식량이 될 저 초원의 동물들에게 향할 수 있겠지요.

 그것 또한 알지 못할 슬픔.

 그래도 상처는 생길 것이며 결국 치명타가 되어 죽음을 맞게 되겠지요.

 삶 속에 와닿았던 화살의 비수같은 말없은 침묵의 언어 앞에 잠시 침묵하렵니다.

 (나를 향해 왔을 것만 같은 화살 앞에서, 초록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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