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가을 오후에
정신과 병동은 서 있다.
지금은 봄이지요. 봄 다음엔 겨울이 오고 겨울 다음엔 도둑놈이 옵니다. 몇 살이냐고요? 오백두 살입니다. 내 색시는 스물한 명이지요.
고시를 공부하다 지쳐버린
튼튼한 이 청년은 서 있다.
죽어가는 나무가 웃는다.
글쎄, 바그너의 작풍이 문제라니 내가 웃고 말밖에 없죠.
안 그렇습니까?
정신과 병동은 구석마다
원시의 이끼가 자란다.
나르시스의 수면이
비에 젖어 반짝인다.
이제 모두들 돌아왔습니다
추상을 하다, 추상을 하다
추상이 되어버린 미술학도.
온종일 백지만 보면서도
지겹지도 않고, ㅡ
비 오는 것만 쓸쓸하다.
이제 모두들 깨어났습니다.
* 2009년 제54회 현대문학상 수상시인 자선작 중에서, 2009년 제54회현대문학상 수상시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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