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정신과 병동 [마종기]

초록여신 2008. 12. 13. 19:10

 

 

 

 

 

 

 

 

 비 오는 가을 오후에

 정신과 병동은 서 있다.

 지금은 봄이지요. 봄 다음엔 겨울이 오고 겨울 다음엔 도둑놈이 옵니다. 몇 살이냐고요? 오백두 살입니다. 내 색시는 스물한 명이지요.

 

 

 고시를 공부하다 지쳐버린

 튼튼한 이 청년은 서 있다.

 죽어가는 나무가 웃는다.

 글쎄, 바그너의 작풍이 문제라니 내가 웃고 말밖에 없죠.

 안 그렇습니까?

 

 

 정신과 병동은 구석마다

 원시의 이끼가 자란다.

 나르시스의 수면이

 비에 젖어 반짝인다.

 

 

 이제 모두들 돌아왔습니다

 추상을 하다, 추상을 하다

 추상이 되어버린 미술학도.

 온종일 백지만 보면서도

 지겹지도 않고, ㅡ

 비 오는 것만 쓸쓸하다.

 

 

 이제 모두들 깨어났습니다.

 

 

 

 

* 2009년 제54회 현대문학상 수상시인 자선작 중에서, 2009년 제54회현대문학상 수상시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