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두 개의 일상 [마종기]

초록여신 2008. 12. 13. 19:15

 

 

 

 

 

 

 

 

익숙지 못한 저녁 이후에는

커피잔에 뜬

바흐의 음악을 마신다.

 

 

서양에 몇 해 와서야

진미를 감촉하는

요원한 거리.

 

 

그만한 거리를 두고

가물에 피부가 뜬

전라도 한끝의 전답이

묵은 신문에서 살아나와

갑자기 내 형제가 된다.

 

 

죽으나 사나 형제여,

당신의 그림자는 길고 여위다

그 변치 않는 그림자를

황급히 주머니에 쑤셔넣고

천장이 높은 파티에 참석한다.

 

 

밤에는

구겨진 내 그림자를 꺼내어

잊어버린 깃발같이

흔들어본다.

 

 

두툼한 부피의 주머니를,

내 그림자의 음악을

요즈음은 불편하도록 실감한다.

 

 

 

* 2009 제54회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수상시인 자전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