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지 못한 저녁 이후에는
커피잔에 뜬
바흐의 음악을 마신다.
서양에 몇 해 와서야
진미를 감촉하는
요원한 거리.
그만한 거리를 두고
가물에 피부가 뜬
전라도 한끝의 전답이
묵은 신문에서 살아나와
갑자기 내 형제가 된다.
죽으나 사나 형제여,
당신의 그림자는 길고 여위다
그 변치 않는 그림자를
황급히 주머니에 쑤셔넣고
천장이 높은 파티에 참석한다.
밤에는
구겨진 내 그림자를 꺼내어
잊어버린 깃발같이
흔들어본다.
두툼한 부피의 주머니를,
내 그림자의 음악을
요즈음은 불편하도록 실감한다.
* 2009 제54회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수상시인 자전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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