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차이코프스키의 밖은 있겠지.
입속의 검은 잎의 밖이 어딘가 분명히 있듯.
어딘가 엘리제를 위하여의 밖은 있겠지.
신데렐라를 돌려보낸 12시의 밖이 어딘가 분명히 있듯.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것은 쉬운 일.
오늘도 난 슬리퍼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왔는데.
어딘가 오늘 나간 밖의 밖도 분명 있겠지.
아무리 문을 열고 나가도 나갈 수 없는 밖이 있겠지.
살아서는 볼펜이 알 수 없는 볼펜의 밖이 분명 있겠지.
* 앨리스네 집 / 민음사, 200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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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희
1972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서울예대 문창과를 졸업하고 200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21세기전망'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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