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반지의 전설 [강정]

초록여신 2008. 10. 28. 14:45

 

 

 

 

 

 

 

 

난생처음 반지를 가졌다

누군가 내 손을 오래 잡고 놓지 않던 자리

손가락 사이마다 뭉친 시간들 毒으로 올라

나는 처음 내 늙은 아이의 냄새를 확인했다

 

 

무언가 사라진 자리엔

오만 팔천 시간 동안의 긴 필름이 흐른다

때로 지구는 그것을 별의 이동이라 생각한다

毒 오른 손끝으로 짚어보면 여전히 불에 타는 마음의 신열

한 사람이 불타 죽어 비로소 딴 세상이 되는 몸 안의 전설

 

 

처음 만진 시간은 물이었다

붉게 번진 손가락들이 물 표면에 번져

지구의 윤곽을 지웠다

몸서리치는 나무 꼭대기마다 색색의 뱀들이 허공을 휘감다

노을에 매달려 신음하는 땅 끝에서 나는

죽은 내 얼굴을 확인했다

 

 

물속에 풀린 손가락들이 매만지는 지구의 밑동

손아귀에 끼인 바람을 후려쳐 봄은 내 목을 휘감는다

반지를 갖는 순간 나는 이미 저 세상과 결혼했더라

 

 

 

* 키스 / 문학과지성사, 2008. 10.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