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속으로 날아든 포자
몇십 켤레의 신발을 닳으면서 내가 왔던 길들
새 신발로 갈아 신으며 가야 할 길들 모두
내 몸 속으로 들어와 접히고 접혀
몸이 마침표가 된다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내 안에서
너는 시루떡 같은 포갠 길 사이에 없는 듯이 눈감는다
너를 연한 순으로 틔우기 위해
두 장의 나비 날개 떡잎으로 날아오르게 하기 위해
나는 내 살을 기름지게 찌운다
먼 기억처럼 가슴이 뻐근히 아파오면
깊이 모를 향기 같은 통증
조금씩 이동하는 너는 실뿌리를 내리는가
까맣게 송송 구멍이 뚫리는 심장, 혹은 심정
몸은 화분 속의 흙처럼
나밖에는 나를 돌보는 이 없다는 외로움의 인식으로 키워진
나의 살 어딘가를 뚫고 너는 나온다
내 몫의 빛다발을 부어준다
내 염통, 내 허파는 너의 자양분이 된다
주검을 담보로 피는 열망의 싹이여
내 정신을 그대로 화석으로 간직하며 그 위로 줄기는 뻗는다
내 삶을 이고 새로 길을 열어가는 너는
詩인가 사랑인가
마침표 후 새로운 문장이 쉼표를 찍으며 이어진다
* 장미라는 이름의 돌멩이를 가지고 있다, 문학동네.
'詩다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의 절반 [이병률] (0) | 2008.10.22 |
---|---|
이동 [정영선] (0) | 2008.10.22 |
잠자는 사과나무를 읽다 [정영선] (0) | 2008.10.22 |
철새 도래지에서 [김진경] (0) | 2008.10.20 |
범凡우주적으로 쓸쓸하다 [최금진] (0) | 2008.1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