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동충하초(冬蟲夏草) ....... 정영선

초록여신 2008. 10. 22. 18:33

 

 

 

 

 

 

 

 

 

너는 내 속으로 날아든 포자

몇십 켤레의 신발을 닳으면서 내가 왔던 길들

새 신발로 갈아 신으며 가야 할 길들 모두

내 몸 속으로 들어와 접히고 접혀

몸이 마침표가 된다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내 안에서

너는 시루떡 같은 포갠 길 사이에 없는 듯이 눈감는다

너를 연한 순으로 틔우기 위해

두 장의 나비 날개 떡잎으로 날아오르게 하기 위해

나는 내 살을 기름지게 찌운다

먼 기억처럼 가슴이 뻐근히 아파오면

깊이 모를 향기 같은 통증

조금씩 이동하는 너는 실뿌리를 내리는가

까맣게 송송 구멍이 뚫리는 심장, 혹은 심정

몸은 화분 속의 흙처럼

나밖에는 나를 돌보는 이 없다는 외로움의 인식으로 키워진

나의 살 어딘가를 뚫고 너는 나온다

내 몫의 빛다발을 부어준다

내 염통, 내 허파는 너의 자양분이 된다

주검을 담보로 피는 열망의 싹이여

내 정신을 그대로 화석으로 간직하며 그 위로 줄기는 뻗는다

내 삶을 이고 새로 길을 열어가는 너는

詩인가 사랑인가

마침표 후 새로운 문장이 쉼표를 찍으며 이어진다

 

 

 

 

* 장미라는 이름의 돌멩이를 가지고 있다,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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