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광휘의 속삭임 [정현종]

초록여신 2008. 9. 13. 05:07

 

 

 

 

 

 

 

 

 

 

 

저녁 어스름 때

하루가 끝나가는 저

시간의 움직임의

광휘,

없는 게 없어서

쓸쓸함도 씨앗들도

따로따로 한 우주인,

(광휘 중의 광휘인

그 움직임에

시가 끼어들 수 있을까.

 

 

아픈 사람의 외로움을

남몰래 이쪽 눈물로 적실 때

그 스며드는 것이 혹시 시일까.

(외로움과 눈물의 광휘여)

 

 

그동안의 발자국들의 그림자가

고스란히 스며 있는 이 땅속

거기 어디 시는 가슴을 묻을 수 있을까.

(그림자와 가슴의 광휘!)

 

 

그동안의 숨결들

고스란히 퍼지고 바람 부는 하늘가

거기 어디서 시는 숨 쉴 수 있을까.

(숨결과 바람의 광휘여)

 

 

 

 

* 광휘의 속삭임, 문학과지성사(2008)

 

 

 

『광휘의 속삭임』에서 우리는, 의식세계를 가득 채우고 있는 복잡한 의미의 거미줄을 걷어내고, 사물의 있음 그 자체, 움직임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시적 화자의 자세에 주목하게 된다. 시인은 이제 사물의 바깥에서 사물을 해석하고 그에 대한 복잡한 의미의 얼개를 부여하는 대신, 사물들과 한 몸으로 움직이는 시를 갈망한다.

ㅡ 시집『광휘의 속삭임』, 속표지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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