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나이를 먹어가는 그녀 [이선영]

초록여신 2008. 9. 6. 10:10

 

 

 

 

 

 

 

 

 

 

이 세상에 막 태어났을 때 그녀의 육체는 3.3kg

여덟 살이 되었을 때 그녀의 육체는 18kg

열네 살 땐 36kg

스물네 살 땐 51kg

스물일곱 살 땐 52kg......

해마다 불어나는 육체가 무거워

휴일이 오면 그녀는

종일을 누워 지낸다

대낮의 밝은 햇빛 아래서도

무거운 육체를 질질 끌며 다닌다

먹기 위해 벌려야 하는 입술이 무겁고

입술 끝에 매달린 말 한마디가 무겁고

웃음짓듯 치켜올려야 하는 입꼬리가 무겁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 남자가 무겁다

한 해가 또 가고

그 다음 한 해가 또 가고

그렇게 무수한 한 해가 가면

그녀의 육체는 몇 kg이 될까?

몇 kg이 되었을 때 그녀는 그녀의 육체로부터 가볍게 뜰까?

 

 

 

 

 

 

* 글자 속에 나를 구겨넣는다, 문학과지성사(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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