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어제가 아닌 오늘 [이선영]

초록여신 2008. 9. 6. 10:15

 

 

 

 

 

 

 

 

 

 

어제와 달라지지 않은 내 생물적 습성으로 오늘을 시작한다

이 오늘은 분명 어제가 아니건만 어제와 닮은 구석이 있다

오늘은, 어제를, 어느 시점까지는 복제해낸다

나는 오늘도 어제를 다시 살고 있다

나는 어제의 나를 행여 다치지나 않을까 손 놓지 않고

오늘의 문턱을 넘겨 데리고 왔다

하지만 수많은 어제를 보내고 그것에 점점 커지는 수치를 매기고 나서야 알아챈 것이다

어제와 언뜻 닮아 보이는 오늘은 어제를 기억하려하지 않는다는 걸

오늘은 어제와 잠시 합류했다가 종내는 어제를 뒤로 밀어젖히고는

밀어젖혀진 어제를 누르고 미끄러져 나오는 힘으로 흐르는 강물, 바다, 물살이다

어제가 아닌 오늘 나는 또 한 번 흘렀다

다만 나는 강물이 아닌 육체여서 또 한 번 흐른 내 육체는 어제보다 한 박자 늙어 있는 것이다

 

 

 

 

* 평범에 바치다, 문학과지성사(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