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도화 아래 잠들다 [김선우]

초록여신 2008. 9. 1. 02:20

 

 

 

 

 

 

 

 

 

 동쪽 바다 가는 길 도화 만발했길래 과수원에 들어 색(色)을 탐했네

 온 마음 모아 색을 쓰는 도화 어여쁘니 요절을 꿈꾸던 내 청춘이 갔음을 아네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 죄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온당한가

 이 봄에도 이 별엔 분분한 포화, 바람에 실려 송화처럼 진창을 떠다니고

 나는 바다로 가는 길을 물으며 길을 잃고 싶었으나

 절정을 향한 꽃들의 노동, 이토록 무욕한 꽃의 투쟁이

 안으로 닫아건 내 상처를 짓무르게 하였네 전생애를 걸고 끝끝내

 아름다움을 욕망한 늙은 복숭아나무 기어이 피워낸 몇 낱 도화 아래

 묘혈을 파고 눕네 사모하던 이의 말씀을 단 한번 대면하기 위해

 일생토록 나무 없는 사막에 물 뿌린 이도 있었으니

 내 온몸의 구덩이로 떨어지는 꽃잎 받으며

 그대여 내 상처는 아무래도 덧나야겠네 덧나서 물큰하게 흐르는 향기,

 아직 그리워할 것이 남아 있음을 증거해야겠네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

 죄를 무릅써야겠네 아주 오래도록 그대와, 살고 싶은 뜻밖의 봄날

 흡혈하듯 그대의 색을 탐해야겠네

 

 

 

 

* 도화 아래 잠들다 / 창비, 2003초판1쇄, 2004초판3쇄.

 

 

 

.......

도화 아래서 그대의 색을 탐했을 때

난 민들레영토에서 시집읽기의 첫, 시집의 몸을 탐했네

슬픔의바다님, 우물속풍경님과 함께.

2004년 8월 1일이였다네.

허기는 먹는 것으로 달래며 도화 아래 시집의 시를 훔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