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ㅡ숲의 역사
1
사랑은 죄였다 특히 상대의 허락 없이 홀로 얼굴 붉힌 죄, 한 세계에서 추방당한 것들이 이곳에 모여들었다 가벼운 죄를 지은 것들이 바람에 떠밀려왔다 보다 무거운 것들은 짐승에게 먹힘을 당하고도 여러 번, 저희의 죄를 되새김질당한 후에야 둥근 뼈 부서져 이곳에 던져졌다 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 했다 다시는 흔들리지 않으리라 뿌리내려야 했다 수맥의 지도를 펼쳐 들고 잇몸인 붉은 흙에 단단하게 제 몸을 밀어 넣었다 그래도 미심쩍은 것들은 발등에 부적 같은 버섯을 땅땅 박아 넣었다 집성촌을 이루고 형벌의 상형문자로 수형도를 그렸다. 비나 눈에도 지워지지 않을 푸른 족보를 엮었다
그러나 사랑은 죄였다 푸른 귓바퀴에 새들을 길러 계명을 묵송케 하고도, 저녁의 흰 거미를 먹여 팔방의 무늬에 수정빛 염주를 매어달고도 사랑은 죄였다 해마다 생겨나는 그리움의 나이테를 지울 수 없다면 사랑은 아픈 죄였다 때때로 바람에게 몇 벌의 옷을 벗어주고야 얻어들은 풍문에 온몸은 열병 들고 겸손한 겨울날 이 삶은 나에게 너무 힘들다. 고백의 엽서들을 보내고 물도 밥도 먹지 않을 때마다 아프게 죄어오는 형벌의 테, 버림받은 자 누구도, 다시 버릴 수 없다 섭리의 목책에 갇혀 마르고 옹이 박힌 손으로 저희들의 그리움을 후려치면 밤이면 짐승처럼 엎디어 살았다
2
궁형(宮刑) 당한 내가 자랑스럽다 나는 죄짓지 않을 것이다 버림받지, 않을 것이다
* 무서운 속도, 랜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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