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어둠의 악보 [이민하]

초록여신 2008. 7. 13. 06:47

 

 

 

 

 

 

 

 

 

 

구름의 갈기가 뭉텅뭉텅 떨어집니다.

하늘의 허리 하늘의 옆구리 하늘의 겨드랑이

어제와 오늘처럼 절개선 없는 패턴이 검은 락스에 표백된 오선지 같아요.

허공의 모든 살결에는 입이 있나니

빛이 불러들인 모서리들이 어둠의 토악질로 뭉개질 때

난독증에 걸린 악기처럼 너희들은 짚북데기 위에

몸을 섞었구나. 점성술사들이여,

깨지지 않는 약병들이여,

불타는 지붕 아래 구순기를 지나는 핑크빛 돼지들이 도파민을 나르는 동안

독작을 하는 갈매기 눈알처럼 점점이 공중에 박힌

시간들이여, 잠들지 않는 하프 연주여.

마흔일곱 개의 뼈를 일으켜주세요. 넘치는 대지를 구겨 넣는 늑골 사이

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포돗빛 링거 와인,

정맥을 휘도는 썩은 열매들.

병풍을 두른 산맥들이 웨하스처럼 부서집니다.

낡은 투구를 눌러쓰고 수피댄스를 추듯 버펄로들이여,

소용돌이치는 나의 유골들이여.

먼지목욕을 하며 질주하는 목구멍의 절벽 끝,

석류나무가 붉은 암 덩어리를 팡 팡 터뜨리면

어둠의 눈 어둠의 이빨 어둠의 콧구멍

해파리처럼 벌떡거리며

마흔일곱 개의 현 위에 설탕 같은 손가락을 얹고

우리의 탄주는 달려요 달려요 달려요

갈기를 목구멍에 매달고

또다시 어느새 울컥, 빛이 모서리를 불러들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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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fi Dance: 묘비를 상징하는 긴 모자를 쓰고 추는, 신과의 교감을 위한 아랍의 회전춤.

 

 

 

 

 

* 음악처럼 스캔들처럼,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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