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아픈 몸이 [김수영]

초록여신 2008. 7. 13. 06:38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자

골목을 돌아서

베레모는 썼지만

또 골목을 돌아서

신이 찢어지고

온몸에서 피는

빠르지도 더디지도 않게 흐르는데

또 골목을 돌아서

추위에 온몸이

돌같이 감각을 잃어도

또 골목을 돌아서

 

 

아픔이

아프지 않을 때는

그 무수한 골목이 없어질 때

 

 

 (이제부터는

 즐거운 골목

 그 골목이

 나를 돌리라

 ㅡ아니 돌다 말리라)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자

나의 발은 절망의 소리

저 말[馬]도 절망의 소리

병원 냄새에 휴식을 얻는

소년의 흰 볼처럼

교회여

이제는 나의 이 늙지도 젊지도 않은 몸에

해묵은

1,961개의

곰팡내를 풍겨 넣어라

오 썩어가는 탑

나의 연령

혹은

4,294알의

구슬이라도 된다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자

온갖 식구와 온갖 친구와

온갖 적들과 함께

적들의 적들과 함께

무한한 연습과 함께

 

 

 

 < 1961 >

 

 

 

 

* 김수영 전집 1(시),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