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격만으로 표정을 짓는 사람을 만나면 연애를 할 테야. 아이스크림처럼 살 살 녹는 너의 살. 살을 모두 발라내고 연애를 할 테야. 날마다의 저녁은 성찬. 은촛대와 접시를 나르는 하얀 머릿수건과 에이프런을 두른 여자들. 그녀들은 달빛 엉덩이를 흔드네. 나풀거리며 우리는 끝도 없이 긴 사각 식탁에 모여 핏물이 덜 빠진 양고기를 씹네. 허기와 요리의 접경인 허리에서 살과 살은 섞이네. 불어나는 허리 아래 뒤축 닳은 구름. 당신의 부피가 죽이는 것들. 당신은 너무 별처럼 헤퍼. 당신이 모은 눈물은 밤마다 화려해서 식도를 토해내는 소화불량. 부드러운 뼈대를 혁대처럼 날려봐. 섬세한 그림자의 각도. 관절마다 따뜻한 어둠의 유배. 골격만으로 울음을 우는 사람을 만나면 연애를 할 테야. 뼈 끝에서 비눗방울처럼 톡톡 부서지는 눈물. 뼈와 뼈가 다리를 포개고 뼈와 뼈가 잔을 들고 창을 바라보네. 온몸의 창살은 육질의 우리를 안으로 밀어 넣고 내장 같은 아침을 게우네.
* 음악처럼 스캔들처럼
.......
우리가 누군가를 불편해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욕망을 이해할 수 없어서이기도 하다. 그때 어떤 시는 놀라운 직관으로 그 욕망을 표착한다. 이를테면 '거식증자'들의 욕망은 무엇인가. 이 시는 거식증자에 매혹되어 있는 화자를 내세워 그 화자의 욕망을 드러내는 방식을 택해 거식증의 심층으로 유려하게 들어간다. 인용하지 않은 도입부에서 화자가 거식증자들을 "골격만으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라고 매력적으로 명명하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세계로 접어들게 된다. 이어 시인이 묘사하고 있는 것은 몽환적인 성찬의 풍경. "허기와 요리의 접경인 허리에서 살과 살은 섞이네." 허기와 요리가 합쳐져서 '허리'가 된다는 식의 말놀이가 덧붙여지고, 화자는 "당신의 부피가 죽이는 것들"이라는 이라는 구절로 살에 대한 혐오감을, 혹은 육식을 하는 '우리'에 대한 불편함을 표현한다. 그 다음은 두 명의 거식증자들이 함께 있는 풍경. "뼈와 뼈가 다리를 포개고 뼈와 뼈가 잔을 들고 창을 바라보네." "뼈"는 거식증자들의 제유(提喩)이고, "온몸의 창살"은 뼈만 남아 있는 그들의 육체의 은유일 것이다.이 후반부는 아름답다. '타자'의 욕망 소긍로 깊이 들어가지 않으면 발생할 수 없는 종류의 상상력이다. 타자에 대해 발언하지 않고 타자로서 발언할 때 미학과 윤리학은 이렇게 포개진다.
ㅡ 신형철 (해설 << 어제의 상처, 오늘의 놀이, 내일의 침묵>>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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