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현주소 [이원규]

초록여신 2008. 5. 16. 10:37

 

 

 

 

 

 

 

 

 

 

1

 

주소 좀 불러주세요

예에, 구례군 문수골의 외딴집인데요

너무 추상적이지 않나요?

 

 

매화나무 환한 그늘 아래

나의 눈썹을 스치는 바람의 현주소

행여 낡은 집이 무너지고

세상이 바뀌어도 끝끝내 변치 않을

 

 

북위 35도 12분 38초

동경 127도 31분 39초

 

 

상투적인 편지는 유실될지 모르니

꼭 한번 놀러 오세요 매화꽃

다 지기 전에 또 이사하기 전에

 

 

 

2

 

뭐라구요, 너무 구체적이어서

오히려 잘 못 찾겠다구요?

 

 

그 참, 벌 나비

북극성은 잘만 찾아오시는데

 

 

차라리 그대 마음의 현주소를

스리슬쩍 알려주신다면

아니 간 듯 내 먼저 낮달처럼 찾아뵙지요

 

 

 

 

 

* 강물도 목이 마르다 / 실천문학사, 2008.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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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규의 시집 『강물도 목이 마르다』에는 불혹을 넘어 그가 정처한 지리산의 꽃과 바람, 별과 강물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스며 있다. 때론 향기롭고 때론 쓸쓸하고 때론 가슴 알싸해지는 이 이야기들은 기실 이승의 삶에서 그가 오래 그리워하고 아파하고 사랑한 삶의 이야기들에 다름 아니다. 그의 시에는 오랜 운수행각 끝에 그가 찾아낸 복사꽃 핀 인간의 마을이 있고 부안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를 하며 나아가던 자벌레의 따뜻한 숨소리가 스며 있다. 동시대에 이원규와 같은 시인과 함께 지리산의 꽃과 섬진강의 물안개를 바라보며 살아간다는 것은 축복이며 아름다운 일이다.

ㅡ 곽재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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