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사랑의 성냥 [차창룡]

초록여신 2008. 5. 12. 17:40

 

 

 

 

 

 

 

 

 

 

 

립스틱이 이 생명체가 살아 있다는 유일한 증거다

립스틱이 발라진 입술을 문지르면 확

불이 붙는다

사랑이란 이렇게 쉽게 불붙는 것

조심하라

그것은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드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

 

 

성냥에는 불의 신 아그니*가 잠들어 있다

성냥의 입술을 문지르는 것은

신을 부르는 것

당신의 시종이 모습을 나타낸다

시종은 따라오라 따라오라 손짓한다

저 멀리 신의 마을이 있으니

파멸이 있으니

 

 

성냥에 립스틱을 발라준 대가로

프로메테우스는

카프카스 산의 바위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바쳤다

성냥의 붉은 입술은 곧

죽음을 각오한 신의 인간을 향한

사랑의 정표였단 말인가

 

 

불이 확 붙으면

성냥의 열정은 시작된다

성능이 좋을수록

무섭게 타들어오는

앗 뜨거 얼른 버리고야 마는

사랑이란 이렇게 쉽게 시작되고

그것으로 끝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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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 신화 속의 '불의 신'. 희생제에 바쳐진 제물을 신들에게 운반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 고시원은 괜찮아요,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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