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해질녘에 아픈 사람 ㅡ 보행 명상 [신현림]

초록여신 2008. 5. 11. 00:02

해질녘에 아픈 사람

ㅡ 보행 명상

 

 

 

 

 

 

 

 

 

어느 해 가을 자전거를 타다

마티즈의 실수로 6주 진단을 받은 내가

주일 교통사고 사망자에

안 낀 것만 해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송화 날리는 봄날

와인 두 잔으로 목 디스크 통증 가라앉히니

세상은 참 느리게 흐르고

붉은 등 같은 두 눈에 눈물 흘러서

보행 명상엔 더없이 좋았다

 

 

절묘한 사고들로 큰 불운을 액땜하며

뜨거운 물리치료에 저녁 해는 다 지고

미칠미칠 미칠 듯이 봄바람만 부는데

 

 

천천히 나를 타이르며 천천히 걸었다

더 기쁘기 위해 슬픈 연꽃을 받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시련을 안고

더 깊어지기 위해

괴로운 뿌리는 강으로 뻗어간다고

 

 

 

 

 

 

 

* 해질녘에 아픈 사람,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