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회오리를 삼키다 [김혜순]

초록여신 2008. 5. 8. 21:54

 

 

 

 

 

 

 

 

 

 

회오리를 삼켜본 적 있나요?

회오리는 등뼈로 삼키는 것

몸이 뒤로 휙 넘어가고

머리칼이 얼어붙은 빨래처럼 뻣뻣해지고

소름이 등뼈 바깥으로 좌악 끼치는 느낌

 

 

몸이 활처럼 팽팽해지면 다 볼 수 있어요

당신의 상처는 붉게 터져 골골이 피의 계곡이네요

산 것들을 먹고 산 죄 핏빛이니

검은 땅 위에 붉은 입술들 활짝 피었네요

 

 

사랑하는 당신의 머리칼 아래 백골은 이미 죽었네요

종종거리는 행인들의 등허리에

갈퀴 같은 바람의 미소 번지네요

하나님은 이 세상 하직하고 간 사람들이 남긴

텅 빈 이불들 긁어모아

저 높은 곳에 푸른 불을 놓았네요

세상이 너무도 투명한 비단 속옷 같아

속이 다 비치네요

 

 

나는 바람의 거처인가요?

아니면 회오리의 숙주인가요?

저 깊은 속에서 뱀같이 서늘한

바람의  길이 올라오면

내 팔다리는 태풍 온 날 대나무 이파리처럼 나부끼고

내 눈물이 후두둑후두둑 흩뿌려지면

구슬픈 노래가 몸속에서 회오리쳐 올라오네요

누가 와서 제발 자꾸만 당겨지는

활시위 같은 이 몸을 붙들어줘요

 

회오리를 삼켜본 적 있나요?

싫어요! 싫어요! 울면서 밤바다에 나와 앉아본 적 있나요?

와아 몰려와서는 해변의 자갈들 힘껏 팽개치면서

받아, 받아, 받아 소리치는 바다 소리 들어본 적 있나요?

억만 개 물방울들이 각기 다른 아우성

들리나요?

가기 싫은 흔들은 정말 얼마나 잘 우는지 몰라요

그 소리 듣느라 두 주먹 불끈 쥐고 참아본 적 있나요?

 

 

가요! 가요! 돌아가요! 외쳐본 적 있나요?

 

 

 

 

 

 

 

 

* 당신의 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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